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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소리 수집가 – 소음 속에서 예술을 듣는 사람들

by 뚜프리 2025. 6. 6.

우리는 매일 어떤 ‘소리’ 속에서 살고 있을까?

오늘은 도시 소리 수집가 라는 직업을 소개 해 드릴 예정입니다.

도시 소리 수집가 – 소음 속에서 예술을 듣는 사람들
도시 소리 수집가 – 소음 속에서 예술을 듣는 사람들


출근길 지하철의 브레이크 소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대화, 공사장의 망치질, 택배 기사가 누르는 초인종, 골목길 고양이의 울음, 아파트 단지를 울리는 피아노 소리.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소리’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소음’으로 치부되고, 우리는 이를 걸러내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화이트노이즈를 켜고, 조용한 공간을 찾아 도망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일상의 ‘소음’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록하고, 조합하고, 해석해내며 새로운 감각의 예술로 재구성하는 사람들. 바로 오늘 소개할 도시 소리 수집가입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도시의 소리를 수집하고 편집하여 예술, 힐링, 콘텐츠로 변환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시끄럽고 귀찮은 소리가, 이들에겐 하나의 악기요, 음악의 재료입니다. 그들이 녹음기나 마이크를 들고 도시의 구석구석을 떠도는 이유는 단 하나 — 이 도시의 ‘감정’을 소리로 기억하고 전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도시 소리를 모으고, 다듬고, 이야기로 엮는 일


도시 소리 수집가의 일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복합적인 작업입니다. 우선 이들은 소리를 ‘채집’합니다. 마치 사진작가가 빛을 수집하듯, 이들은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만 들리는 독특한 소리를 찾아 다닙니다. 새벽의 역 광장, 비 내리는 저녁의 버스 정류장, 주말 오후의 시장통. 이때 사용하는 장비는 고성능 마이크, 녹음기, 소리의 방향과 깊이를 분석하는 특수 프로그램 등입니다.

다음은 이 소리들을 ‘편집’하는 단계입니다. 무작위로 수집된 사운드는 음악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잡음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들은 그 안에서 리듬을 만들고, 층위를 나누며, 볼륨을 조절하고, 효과음을 가미하면서 소리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 나갑니다. 예를 들어 낮에는 바쁘고 정신없던 시장의 소음을, 밤이 되어 조용해진 골목길의 정적과 연결해 도시의 리듬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은 그 소리를 ‘어디에,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입니다. 사운드 스케이프 디자이너들은 전시, 미술관, 앱, 팟캐스트, 명상 콘텐츠, 도시 브랜딩 등에 이 사운드를 활용합니다. 최근엔 지자체와 협업하여 ‘도시의 사운드 로고’를 만들거나, 복합문화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이들의 사운드가 활용되기도 하죠.

한 유명 사운드 디자이너는 “도시는 눈보다 귀로 먼저 들어온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도시가 품은 수많은 이야기를, 시끄럽고 무심한 배경 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세상에 들려주는 ‘소리의 큐레이터’인 셈입니다.

 

소음 속에서 감정을 듣는 사람들


도시 소리 수집가는 단지 기술자나 음향 전문가가 아닙니다. 이들은 일종의 감정 탐지자이며, 도시의 무드와 분위기를 읽어내는 감각자입니다. 누군가는 절대 눈치채지 못했을 어떤 순간의 떨림, 두근거림, 정적의 여운을 이들은 듣습니다. 그리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도 ‘경험’하게 만들어 줍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명상 앱이나 힐링 콘텐츠에서 이들의 작업이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바쁜 도시인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기 위한 오디오 콘텐츠에서, 단순한 자연의 소리보다 오히려 ‘도시의 익숙한 소리’가 더 진정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속의 소리가 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이들은 기록자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소리들 — 오래된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 소리, 예전 버스의 엔진음, 사라진 골목시장의 아침 풍경 — 을 기록하여 아카이빙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도시의 사운드 타임캡슐’을 만드는 셈입니다.

사운드 스케이프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점차 다양한 영역에서 그들의 작업이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도시 마케팅, 공공 디자인, 전시, 심리치유, 콘텐츠 제작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간의 감정’을 디자인하는 기술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놓친 ‘일상의 음악’을 대신 듣는 사람들


도시 소리 수집가는 마이크 하나를 들고 어딘가를 조용히 걷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새벽 네 시의 골목 소리, 우연히 마주친 어린아이의 웃음, 폐공장의 메아리… 그들이 들은 모든 소리는 그 자체로 작은 서사이자, 도시가 말하는 언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바빠서, 너무 시끄러워서 이 소리들을 듣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소리들을 모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이 도시도, 이렇게 숨 쉬고 있어요.”라고.

귀를 막고 사는 시대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세상의 소리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사운드 스케이프 디자이너. 이 특별한 직업은, 우리가 잊은 감각을 다시 깨워주는 사람들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