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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장례식 연출가 - 기억을 기술로 보내는 사람들

by 뚜프리 2025. 6. 6.

 

오늘은 세상의 특이한 직업들 중에서 VR 장례식 연출가 직업을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VR 장례식 연출가 – 기억을 기술로 보내는 사람들
VR 장례식 연출가 - 기억을 기술로 보내는 사람들

 

장례식도 가상현실로? 새로운 이별의 형태


장례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보통 검은 양복을 입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기술이 삶의 모든 영역을 빠르게 바꾸고 있는 오늘날, 장례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생경한 방식이 바로 ‘VR 장례식’입니다.

VR 장례식은 말 그대로, 가상현실을 통해 고인을 추억하고 이별을 경험하는 장례 형식입니다. 현실의 공간이 아닌 가상 세계에서, 고인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 영상, 이야기, 심지어는 고인의 디지털 아바타까지 등장합니다. 현실에서는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이 VR 장비를 통해 하나의 가상 공간에 모이고, 함께 고인을 기억하고 보내는 시간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장례식이 등장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습니다. 병문안조차 어려웠던 상황에서 많은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이별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를 계기로 비대면 장례식, 온라인 추모 공간 등이 생겨났고, 그 흐름 속에서 더 감각적이고 몰입감 있는 추모 방식이 필요해지면서 VR 장례식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인의 삶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이를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콘텐츠로 구현해내는 전문가들. 바로 VR 장례식 연출가입니다.

 

기억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사람들


VR 장례식 연출가는 단순히 기술적인 작업만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기억’을 기반으로 공간을 설계하고, ‘감정’을 중심에 둔 스토리텔러이자 디자이너입니다. 고인의 생전 이야기, 소중했던 장소, 좋아했던 음악, 남겨진 이들의 말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까지… 모든 요소를 조합하여 하나의 가상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고인은 생전에 제주도를 사랑했고, 매년 봄이면 같은 벚꽃길을 걷곤 했다고 합니다. 이 연출가는 그 기억을 바탕으로 제주도의 벚꽃길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그 길을 걷는 고인의 아바타와 함께 유족이 VR 기기를 통해 그 풍경 속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도록 연출했습니다. 고인을 직접 만지는 건 아니지만, 그 공간의 색감, 향기, 목소리, 그리고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까지 생생하게 구현되면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연출가의 일은 기술과 감성을 넘나드는 작업입니다. 3D 모델링, 음향 편집, 스토리보드 구성, AI 기반의 음성 합성 등 다양한 기술을 다루지만, 그 기술을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VR 장례식 연출가는 종종 영상디자이너, 상담심리사, 장례지도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협업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직업이 단지 미래지향적인 실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점점 현실적인 선택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해외에서는 외교적 이유나 이동의 어려움으로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가족들을 위한 비대면 추모 방식이 활성화되며, VR을 활용한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별의 방식은 달라져도, 추모의 마음은 같기에


장례식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의식 중 하나입니다. 그 속에는 이별의 아픔을 다루는 방식, 공동체와의 작별,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죠. 그런 만큼 장례의 방식이 변화한다는 것은 단순한 ‘트렌드’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VR 장례식이 아직은 낯설고, 심지어 거부감이 드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가상세계에서 마주한다니, 너무 인공적이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현실에서 하지 못한 인사를 가상 공간에서라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전통적인 장례 문화에서 소외되기 쉬운 소수자 집단,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 방식이 더 포용적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VR 장례식은 죽음을 피하거나 왜곡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을 통해 고인을 더 깊이 기억하고, 보다 개인화된 방식으로 추모하려는 시도입니다. 정해진 절차나 의식보다, 진짜 고인의 삶을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인 것이죠.

VR 장례식 연출가들은 이처럼 ‘이별의 기술자’이자 ‘기억의 번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물리적 세계를 넘어선 공간에서, 여전히 고인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어줍니다.

지금은 아직 낯설고 생소한 영역이지만, 언젠가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가상현실에서의 이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 누군가 우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정성스럽게 한 편의 공간으로 만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 이별은 조금 덜 아플지도 모르겠습니다.